이성영의 에세이/ 일하기 싫은 날에도 나를 잃지 않는 지혜 연재/11편 땀으로 적신 시간의 지층
NWS방송 seungmok0202
2026년 10월 04일(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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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S방송] 유년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늘 무언가를 골똘히 수행하고 계신 분이었다. 어린 눈에 아버지의 일상은 그저 무겁고 고단해 보이는 신체적 굴레에 불과했으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인간에게 일이라는 것은 단지 생계를 도모하고 허기를 채우는 막연한 목적성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한 인간이 세상이라는 헐벗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자립을 이루어 내기 위해 올리는 지극히 정직한 노동의 제의였다.
아침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일터로 향하던 발걸음은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서글프도록 단단한 선언이었다. 타인에게 삶을 구걸하지 않고, 자신의 손끝에서 스며 나오는 땀방울로 하루를 메꿔 나가는 것. 그 신성한 자립의 과정에서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셨던 것 같다. 정직하게 흐르는 땀은 인간이 가진 슬픔을 어루만지고, 무너지기 쉬운 인격에 존엄이라는 이름의 뼈대를 세워 주었다.

그 노동은 개인의 울타리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이웃의 어깨와 부딪히며 벽돌을 쌓고 길을 터 나가는 과정은,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가난과 고독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는 묵직한 연대였다. 나 이외의 타인을 위해 재화와 노고를 내어주는 행위 속에서, 가난했던 마을은 조금씩 체온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사회라는 유대감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에게 일터라는 공간은 나태함에 쉽게 부식되곤 하는 영혼을 채찍질하는 교실이었다. 정해진 시각에 몸을 일으키고,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고정된 일과야말로 흐트러지기 쉬운 일상에 단단한 규율을 부여해 주었다. 그 서늘한 몰입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기술을 익히고 내면의 지평을 조금씩 확장해 나갔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길과 교량, 그리고 안온한 지붕 아래의 온기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단기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루함과 피로를 묵묵히 견뎌낸 이들이 남긴 뜨거운 유산이다. 오늘의 노동으로 쌓아 올린 작은 성과들은 어두운 들판을 지나갈 다음 세대에게 미약하게나마 길을 밝혀주는 작은 촛불이 되어줄 것이다.

안개가 걷히고 나면, 오늘도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과제를 향해 조용히 손을 뻗을 것이다. 땀 냄새 밴 그들의 옷자락이야말로 이 세상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거룩하고 눈부신 기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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